
하이데거 철학에서 결단은 단순히 어떤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여러 가능성 앞에서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남의 기준에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의 전환을 뜻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정해진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이데거는 이런 선택을 실존적 선택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결단은 불안과 양심의 부름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한 인간이, 그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응답하는 순간에 성립한다. 이 글에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결단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본래적인 삶의 핵심으로 등장하는지, 그리고 실존적 선택이 일상적인 선택과 어떻게 다른지를 깊이 있게 풀어본다.
선택은 많지만, 결단은 드물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일을 먼저 할지, 어떤 말을 할지 끊임없이 결정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선택하는 존재라고 느낀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런 일상적 선택과, 인간의 존재를 바꾸는 결단을 분명히 구분했다.
일상의 선택은 대부분 큰 고민 없이 이루어진다. 사회의 기준, 관습, 타인의 기대가 이미 방향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은 삶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지만, 인간을 자기 자신의 존재로 되돌려 놓지는 않는다. 하이데거가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인간이 언제 자신의 삶을 정말로 ‘선택’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결단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결단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이데거가 말한 결단은 특정한 직업이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다. 결단의 대상은 외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방식이다. 나는 더 이상 세인의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살지 않고, 이 삶을 나의 책임으로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단은 종종 불안과 함께 나타난다. 불안을 통해 인간은 기존의 의미망에서 떨어져 나오고, 더 이상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에 기대어 살 수 없게 된다. 이때 양심의 부름이 울리고, 인간은 응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단은 바로 이 응답이다.
중요한 점은, 결단이 미래를 완전히 예측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단은 확실한 보장이나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끌어안은 채 이루어진다. 하이데거는 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결단의 핵심으로 보았다.
또한 결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 세인의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그래서 결단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갱신되는 태도다. 오늘의 결단이 내일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실존적 선택과 일상적 선택의 차이
하이데거는 실존적 선택과 일상적 선택을 구분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일상적 선택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행위다. 반면 실존적 선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실존적 선택에서는 실패조차도 나의 선택이 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이 점에서 실존적 선택은 인간을 무겁게 만들지만, 동시에 삶을 진정한 삶으로 만든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항상 이런 선택 속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단을 영웅적인 행위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잠시나마 도달할 수 있는 태도의 전환으로 이해했다.
결단은 삶을 바꾸기보다, 삶을 되돌려 놓는다
하이데거의 결단 개념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는 선택을 요구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관계를 단절하거나, 세상과 맞서는 삶을 살라는 뜻도 아니다. 결단은 지금의 삶을 ‘내 삶’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이 태도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삶을 대신 살아주는 구조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을 나의 책임으로 감당한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자유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결국 결단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그 선택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하이데거가 결단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결단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며, 그 순간 존재론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붙잡는 사유가 된다.